1. 나는 점점 뒤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림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서 좀 놀랐다.
2.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누군가에겐 보일 지도 모르니까, 특히 저 사람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고 실력도 굉장히 좋은 사람이니까, 일단 그 말을 신뢰해 보기로 했다.
3.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근래에 배운 점들은 그림을 그릴 때 매트를 할 때와는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트에서는 픽셀 하나, 가시적이지 않은 부분까지 기술적으로 다뤄야 하는 부분인가 하면. 컨셉이나 일반 드로잉은 마치 뭐랄까... 흠.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생각들이 누적되는 그 겹겹이 의 깊이감을 있는 그대로 보이면 보일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냥 그런 완벽히 정돈되지 않은 그림들이 내 눈에 점점 더 멋진 그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걸 뛰어넘어 버리는 그림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그림에서 마저도 그 묘한 겹겹이 누적된 오묘한 느낌들이 담겨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그림은 사진보다 예술 적여 보일 수밖에 없고. 실사와의 갭을 0에 두고, 실사보다 더 실사 같은 그림을 만들어야 하는 매트와는 지향하는 점이 다를 수밖에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4.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선으로 그린다, 면으로 그린다 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효율성을 따라 가다보니 일정한 패턴과 룰을 따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과연 그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질감의 텍스처와 선의 유려함 때문인 것인지, 정밀한 형태감 때문인 건지,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음악 선율 같아 보였다. 음악은 그것을 하나하나 흩어 놓은 것이라면, 그림은 종이 위에 그것을 쌓고, 쌓고, 쌓아 올려놓은 것 같다. 그리고 디지털 드로잉보다 손으로 그린 그림에서 그런 게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디지털 그림에서도 손그림 같은 깊이감이 보이는 사람들의 그림은 또한 오묘하고 아름답다.
5. 그림을 아직 잘 모르겠어서. 그저 백야 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왠지 계속 가다보면 뭔가 내 눈에도 뭔가 어스름한 것이 잡히고 마침내 이 백야의 공포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초원이나 바람에 스산히 흔들리는 푸르고 깊은 숲의 너울거림을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낭만이 있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첫 구절에서의 흰나비가 된 것 같다.
"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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