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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b/cinematography

000. 좋은 그림을 만들려면.

by jtam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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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들이다.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완벽주의에 괴롭고,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 글에 공감할 수 있다.

1.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주어진 100시간이 있다. 보통 위에선 100을 내주곤 상대에 따라 150-200이 필요할 거라 계산한다. 일단 100으로 쪼여놔야 만일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압박감을 갖고 시작하는데, 위에서 레이아웃이나 구성 배치가 오케이라고 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개인 시간 50을 끌어와 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림을 한 번 이상 뒤엎는다. 중간 피드백을 받고 더 그림을 발전시키고 싶으니 또 뒤엎는다. 그림이 발전하는 듯 하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투자 시간 총량에 비해 한 그림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내가 150을 투자한들 스스로 그림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기 어렵다. 내 능력은 150만 투자해서는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10000을 투자하면 저명한 사람이 150을 투자한 만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네겐 10000이 없질 않나? 만까지 필요 없고 2-300만 있으면 된다는 게 너와 나의 착각이고 오만이다. 그림을 자꾸 뒤엎기보단, 시간의 1/2 지점이 오면 그때부턴 그냥 그 그림을 파야 한다.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내 안목에 만족스러운 그림을 만들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상사가 오케이 한 그림이 그 사람의 안목이 부족해서라기 보단,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두가 일단 합의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림을 그리라는 뜻이다. 

2. 먼저 최소한의 그림을 완성하자.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고 완성주의자가 되자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완벽은 없다. 생각보다 네가 바라는 이상은 높다. 그건 네가 전문가여서가 아니다. 일반인이 김태희 얼굴을 두고도 갑론을박을 벌인다. 어디가 부족하고 어디는 어떻다고 말한다. 이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타고나길 아름다움을 안다.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냥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엔 끝이 없다. 추함에도 끝이 없다. 하지만 모두가 어색하지 않고 적당하다고 여길 만한 중간 지점이 존재한다. 정답은 없지만 틀린 답은 있다는 말이 있다. 틀린 답은 기본 로직이 틀린 답을 말한다. 구성이 효과적이지 않다거나, 레이아웃이 좋지 않다거나, 빛이나 색을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주워진 시간의 80은 이 기본에 투자하고, 20은 수정에 대응하자. 더 나은 그림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건 알더라도 그 유혹에 혹하지 말고 일단 밀어붙이자. 그렇게 그림 한 장 한 장을 쌓다 보면, 내공이 생긴다. 더 적은 시간으로 최소한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그땐 여유 시간을 계산해서 그림을 뒤엎어도 된다.

3. 모든 걸 내려놓고, 겸손하자.

상사가 기본 소통이 안될때가 있다. 딱 봐도 눈에 보이는데, 설명을 해도 캐치를 못하거나 딴 소리를 할 수 있다. 이 그림이 산으로 가고 있어서 어떠냐고 물었는데 오케이라고 하기도 한다. 디렉션을 줘서 따라 했더니 그 솔루션이 되질 않는 경우도 있다. 그 기술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디렉션을 그렇게 준거다. 상사의 말이라고 100프로 믿으면 안 된다. 상사 위에 상사가 있고 고리에 고리를 거쳐 디렉터가 있다. 이들 간에 완벽한 소통이 되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라. 나에게 좋은 사수, 최소한 서포트를 해줄 회사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마라. 이 모든 기대가 결국 불만을 만들고,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내가 집중해야 할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 난 상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 할 말은 해야겠지만, 충고하듯 말하면 안 된다. 난 충고를 한 게 아니고 사실을 감정 없이 말한 것뿐인데, 상대방은 가르친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왜? 난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말한 태도를 두고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훈계를 늘어놓는다. 너무 화가 났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먼저 위쪽에 있는 사람은 현재의 능력, 견해, 지식, 기술을 이용해 그 자리에 오른 것이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더 배우거나 달라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니 않을 이유는 무수히 많다.) 게다가 아래쪽에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위쪽에 있는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하면 윗사람이 그것을 모욕과 도전, 비난과 폭로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이 상사에게 진실을 말하고자 할 때는 가능하면 둘만 있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문제를 다루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해결책을 말할 때는 충고하듯이 말하면 안 된다. 

물론 처음부터 화를 내고 말할 사람은 없다. 나도 그랬다. 이게 하나 둘 씩 쌓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 내가 화를 내려고 낸 게 아니라 이미 화가 터져 나온 상태다. 평소 부처님 소리를 듣는 내가 왜 회사에선 이렇게 화를 쏟아내는가. 상대가 내가 성과를 만들고자 하는 일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사면 나에게 정확한 디렉션을 주고 믿음을 줘야 하는데, (할많하않) 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슬슬 화가 올라온다. 그럼에도 내가 저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나는 회사에도, 동료에게도, 상사에게도, 후배에게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기대란 건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들도 포함한다. 그런 기대가 없을 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화를 참는 게 아니라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다. 

0. 결론은 모든걸 내려놓고, 겸손하게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적의 그림을 만들자이다. 모든 신경을 내공을 닦는데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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